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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창문하나님을 즐거워하라(The pressure’s off) 저자 : 래리 크랩 옮긴이 : 윤난영 제1부 무거운 리듬 : 인생, 무엇이 문제인가 인생을 살아가는 법칙 이 세상의 것 이상을 바라는 삶 하나님은 당신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우리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을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할수록 덜 주시거나 아예 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 천국에 갈 때 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 삶의 편안함을 위해 살아 왔는지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마치 이 세상이 우리가 거주할 유일한 세계인 것처럼 행복하기 위한 희망에 매달려 살아 왔다. 더 나은 삶을 살려는 결심 속에 감추어진 무의식적인 생각은 조건을 만족시키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인과 법칙이다. 즉,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한 후,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고 그 규칙대로 따르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B를 택하고, 그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A를 행하는 것이다. A라는 전략이 B라는 목적을 성취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원칙(인생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따라야 하는 원리)을 제공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이 마치 우리가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한 인과 법칙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여긴다. 이것이 성경이 인기가 많은 이유이자, 성경을 읽으면서도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일수가 있다. 우리가 형통한 인생을 살려고 할 때에는, 세상 지혜를 따르든지 성경적 원리를 따르든지 결국 교만해지고 낙심하며 또는 자기만족이나 자기 증오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만든 삶의 원칙 나는 기독교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올바르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었으며, 이 땅에서도 올바르게 살면 축복이 보장되고 깊은 평안을 즐기며, 자녀들은 우리를 존경할 것이고, 영혼은 새로워지고 쉼을 누리며, 사역은 만족스러워서 죽을 때까지 삶이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과 법칙에 따라 살았던 것이다. 나는 인생이 형통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기꺼이 할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은 부담으로 가득했고, 미혹과 의심으로 인한 갈등이 많았다. 일이 잘 풀릴 때 겉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올바로 했기 때문이지”라고 속삭였다. 혹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겉으로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에 주님을 신뢰합니다”라고 표현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떠나질 않았다. 이러한 인과 원리의 생각은 어느 곳에서나 공감을 얻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축복(결과)을 얻기 위해 올바르게 행하는 것(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축복된 삶을 억척스럽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동기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기 원하는 축복을 얻으려는 동기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영적 순례의 길은 인과의 길이 아니며, 또한 건전한 자아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나 선행을 수행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순례의 길은 자아가 깨어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준에 비할 때 얼마나 연약한지 깊이 깨달아 가는 것이다. 가장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대로 행할 수 없음을 점점 더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게로 나아오라 너는 사랑 받는 자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의 음성을 들으면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속삭임을 듣는 것이다. 영적 순례의 길은 은혜로 자유로워지는 자유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떨며 나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려는 이유는, 그것이 특권이며 거룩해지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지 즐거운 삶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는 부요한 축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된다.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당장 축복받는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른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수천 가지 방법으로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옛 생활 방식의 변형이다. 성령은 우리가 세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급진적인 순례의 길을 가도록 초청하신다. 비록 우리 영혼이 여전히 불결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담대하고 두려움 없이 나아오도록 초청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에 자신을 내어 맡기며, 인생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분을 더 깊이 알아 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성령의 새로운 길이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롬7:6) 새로운 길이 열리다 복음이 아닌 길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며, 축복받은 삶을 값진 목적으로 삼고 성경적 원리에 순종하며 신실하게 살면 축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가족과의 좋은 관계, 공동체에서의 좋은 체험,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좋은 사역, 하나님과의 깊은 체험 등의 축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서, 그것 때문에 거룩하게 살고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한다면 잘못이다. 바르게 살아야 하는 다른 이유 가까운 친구가 최근에 나에게 그의 마음을 쏟아 놓았다. “내가 너무 내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싫어.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과도한 일들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지. 그런데 가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내가 설명하고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이 있어, 내 인생의 닻이 풀린 건만 같아 두려워..” 그 친구는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거룩함을 경험할 때에야 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참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깨어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비록 상당히 힘들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의 깨어진 마음은 이제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대로 안식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존하며 간구하며, 말할 수 없는 은혜 안에서 녹아지며, 무조건적인 받아들여짐 속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또한 그럴수록 짓누르는 인과 법칙에서 그를 건져내신 그분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이제는 인생의 평탄과 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신 그분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더 올바르게 살 자유를 얻은 것이다. 아직도 종노릇 하고 싶은가 그러나 새로운 언약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 주장하려는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대로 하시도록 그를 신뢰해야 한다. 둘째, 그가 주시는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만이 선물의 축복보다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을 가치 있게 여긴다.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아 알기까지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인한 더 좋은 소망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더 나은 삶의 축복을 좋아할 것이다. 더구나 신뢰하기보다 주관하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삶이 이루어지도록 주장하려는 인과 방식으로 되돌아 온다.(갈4:3-9) 현대 교회는 마치 앞으로는 더 이상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축복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두 길, 두 갈래의 선택, 삶의 두 가지 방법 모세의 옛 길 → 그리스도의 새 길 ----------------------------------------------------------------------------------------------------------- 궁극적 추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더 나은 삶의 축복 → 하나님께 나아가는 더 좋은 소망 원리를 따름 → 자비를 간청함 축복을 기대함 → 은혜를 발견함 지켜야 하는 의무감 → 참 쉼을 경험함 부담감을 지고 감 → 부담감을 내려 놓음 인과 법칙 아래서 살아감 → 자유의 법 아래서 살아감 제2부 피곤한 세대: 떠나야 할 길 보이지 않는 벌레 내면세계 이 시대는 올바른 영적 인도가 매우 중요한 때다. 현대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올바른 영적 방향에 대한 인도 없이는 이 세상 영에 미혹되기 쉬운 병이 치유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교회는 우리 내면 상태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과 일대 일이나 소그룹 모임을 갖게 해서 올바른 영성을 갖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옛 길로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잘 알아 가는 새 길로 행하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영적 방향을 인도하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한 사람의 태도나 말 속에 감추어진 것을 잘 살펴 진정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해서 진정한 영적 자유를 누리며 영혼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돕는 것이다”(토마스 머튼) 현대 기독교의 큰 비극은 생수의 웅덩이가 우리 영혼의 타오르는 모래 안에 갇혀서 부글거리고 있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면에서 흘러넘치는 생수를 마시기 위해 영혼의 깊은 곳을 파헤치는 대신, 자기기만과 형통한 삶을 위한 전략으로 그것을 덮어 버린다. 그래서 오염된 물을 마시면서도 그것이 깨끗한 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짜 생수다. 그것은 우리를 바꿀 능력이 없다. 우리 꿈이 깨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 인내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바꾸지 못한다. 옛 길은 본성적인 자기 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폭풍우가 오기 전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으며,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런 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어리석은 결심 교회의 부흥은 영혼의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개개인이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해 애쓰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교회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힘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교회가 먼저 진정한 부흥을 한 후에야 우리 문화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변화가 아닌, 성숙한 시민 의식에 뿌리 내린 변화를 할 수 있다. 성령은 우리를 영적 전투에 내보내기 전에 먼저 우리가 연합하도록 이끄신다. 다음의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우리 내면세계에서 혁신적인 영적 변화를 통해 옛 생활의 길에서 새로운 삶의 길로 옮기는 것. 둘째, 교회 안의 진정한 부흥,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해 교인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만을 높이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사람의 음성보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서로 사랑하는 안전한 공동체가 되는 것. 셋째, 세상에서 일상생활 속의 문화적 개혁, 즉 높은 자존감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성취와 능력보다 덕과 겸손으로 변화된 사회를 이루는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 형통하게 사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이 끈질긴 죄라는 사실을 하나님과의 신선한 만남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우리가 율법적인 옛 방식대로 살아 왔음을 깨닫고, 성령의 새로운 길을 알아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려는 갈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고 바로 일어나 사역하느라 바쁜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옛 생환의 길에서 새 생활의 길로 나아가는 영적 혁신을 하면, 교회 안에 진정한 부흥이 있게 되고, 마지막으로 소금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찾도록 만드는 문화적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강요된 갈망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는 것이 아닌 다른 야망이 우리 마음의 가장 중요한 곳을 차지한다면, 그 야망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든지 아니면 천국을 확장하는 것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옛 생활의 길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 될 때 우리는 주님께 붙어 있게 되며, 축복을 추구하는 것은 두 번째 소원이 되고 그럴 때 열매를 맺는다. 바로 그것이 새로운 길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축복에 대한 소원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순간, 우리가 축복받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이행했기 때문에 당연히 축복받아야 한다고 기대하는 순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닌 다른 축복이 인생의 필수이며 이 세상에서 약속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옛 생활의 길을 따라 살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초자연적인 실재를 경험하는 기회를 꾸미고, 원하는 축복을 얻으려고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의존한다. 그래서 아무리 종교적으로 가장하더라도 결국에는 육체의 소욕에 따라 세상적인 삶의 방식대로 살게 되며,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올바르게 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회심할 때 성령은 우리 안에 초자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네 가지 자원을 주셨다. 첫째, 새로운 순결함(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케 만들어 주시는) 둘째, 새로운 정체성(천국의 순례를 가고 있는,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도로서) 셋째, 새로운 성향(실제로 죄보다 거룩함을 더 좋아하는) 넷째, 새로운 힘(주님의 아름다우심을 닮아가고자 하는 용서받은 후사로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얻는 더 좋은 소망보다 더 나은 삶의 축복을 추구하기로 선택할 때 이 모든 자원은 소용이 없게 된다. 즉, 선행을 함으로서 어떤 축복을 받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때 그리스도는 어떤 도움도 약속하지 않으셨다.(갈5:2-4) 현대 유교주의자들 현대 교회에는 현대화된 유대주의사고(갈1:6-7)가 침투해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방법일 뿐이다. 그들은 축복하시는 분과의 관계보다 축복 자체에 더 가치를 두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만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 이외에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올바로 행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법이라면, 우리의 노력은 교만일 수 있고 여전히 우리의 초점은 자아 중심일 수 있다. 성경적 원리(규례)들이 우리가 원하는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방법이 될 때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는 기회가 될 때 진정한 성경적 원리들이 된다. 살아 있는 거짓의 용 옛 생활의 길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보장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나 나쁜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우리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용(우리 주위 세상, 우리를 삼키려 배회하는 마귀, 우리 안에 있는 육체) 가까이에 살고 있다. 원수인 마귀는 우리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에 대해 감탄할 정도로 속삭인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래서 주님을 주권자이신 주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도움을 주는 친구로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주님을 아는 것이란,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 될 뿐이다. 용의 입을 막아라 바울은 그의 고통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 예수를 따르는 풍성한 삶이란 유쾌하거나 좋은 환경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때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풍성한 기회임을 환기 시켜 주었다. 바울의 인생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인생이 즐거울 것이라는 모든 소망을 포기하고 인정하면 인생을 자기 뜻대로 주관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살았다. 그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예수님을 닮아가고 성령을 따라 행했다. 바울은 인생이 평탄하게 되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편안한 삶의 터널을 벗어나서 보배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라는 힘있고 존경 받는 자리를 버렸다. 그는 더 나은 삶의 축복의 길에서 벗어나 더 나은 보배를 약속한 시련과 고통의 순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이 세상에서의 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신앙 순례의 길이 갈등의 긴 여정임을 알았다. 그러나 꾸준한 순종을 통해 자신이 진실로 주의 종임을 인식하고 현재의 하나님 임재와 장차 올 축복에 대한 소망으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다. 진정한 삶을 가로막는 옛 생활 옛 생활의 길은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의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그 길은 마음에 있는 소원, 보람, 사랑, 성취, 자유에 대한 갈망에 호소할 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그 길은 완전하신 분의 임재 안에 있고 싶은 우리의 순수하고 간절한 갈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옛 생활의 길에서 우리는 자신의 갈급함에만 초점을 두고 기독교는 그 소원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처럼 생각한다. 옛 길은 인생이 형통한 항해를 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대신한다. 나는 거의 50년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두 가지가 분명하게 와 닿는다. 첫째는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축복을 얻기 위해 옛 생활의 길에 이끌려 왔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새로운 삶의 길이란 성령의 길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 성령은 하나님이시므로 사랑이시며 거룩하시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하심으로 말씀하신다. 그는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원하는 것을 보시면서 인자하심으로 채워주신다. 그의 열심은 나에게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을 일으키고, 내 마음을 본향으로 향하게 하여 하나님의 임재로 가는 길에 서게 하며, 보배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한다. 동굴에서 나오기→새로운 길로 가야 할 때 어느 날 아침 나는 롬7:6과 히7:18-19을 읽으면서 내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내 앞에 새로운 삶의 길이 있다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래리, 새로운 삶의 길이 있다. 너는 50년 동안 내 거룩함에 참여하려고 했지. 그러나 수년 동안 너는 옛 언약의 값싼 방식대로 살아 왔구나. 너는 이 세상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 초등학문을 따르는 옛 길로 살아 왔지. 마치 이 세상이 본향인 것처럼 애쓰고 꾸미려고 했던 거야. 성령은 지금도 네게 말하고 있단다. 네 형제의 죽음, 네 몸의 암, 네 어머니의 치매, 인간관계의 갈등, 상한 심령 등, 이 세상에서 환멸을 느끼도록 만드는 어려움을 통해서 말이다. 성령은 이악한 세대에 축복받는 더 나은 삶에 목적을 두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며, 진정한 기쁨은 나를 아는 것에 있음을 계속 말하고 있단다. 나를 아는 것을 추구하면 더 나은 삶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너는 이제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을 게다. 너는 지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 갈 수 있단다. 네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배우고 순종할 때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갈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없단다. 너는 항상 기분이 좋은 건 아니겠지만 기쁨이 충만할 것이고 네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어떻게 느끼든지 상관없이 나를 더 알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 너는 견고해져서 더 이상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인간관계와 사역에서 성공하려고, 좀 더 나은 기분을 느끼려고 짐을 지는 옛 생활의 길을 떠나 내 피로 열어준 새 길로 가야 할 때이다. 래리, 옛길에서 나와서 함께 가자!” 이제 의문의 묵은 길을 떠나 성령의 새로운 길을 살아야 할 때이다. 그러나 아직도 옛길이 타당하고 정상적이며 심지어 좋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용의 입에서 나오는 불길이 내 영혼을 타고 남은 재처럼 약하게 한다. 마치 추운 겨울 아침에 벽난로 앞에 지쳐 앉아 있는 노인처럼 말이다. 나는 위험을 잘 보지 못한다. 옛 생활의 길이 악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보고 깨닫는다. 용이 가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빗나간 소원 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서 끊임없이 오는 단 한가지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너의 가장 큰 즐거움을 찾으라”이다. 예수님은 그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려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죽으심으로 모든 것들 중 가장 큰 축복인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는 인생이 에덴의 평안으로 돌아 가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진리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우리가 그 안에 있고, 그가 우리 안에 계시고, 그의 힘으로 살고, 그의 목적에 따라 살며, 그가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우리가 실제로 그와 같이 될 때까지 우리 안에서 그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생명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은 항상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춘다. 성령은 내 결혼 생활이 평탄하게 지속될 것이며 직장을 잃지 않으리라고 보증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내 고통보다 더 심각한 내 영혼의 문제를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신다. 성령은 나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그의 능력에 의지하며 그의 목적에 소망을 두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만 필요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을 뛰어 넘는 가능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기도 제목만을 가지고 그에게 나아가면 그를 조금 밖에 체험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분을 만나는 것보다 우리 문제에만 몰두하며 문제 해결에 급급하면 그의 임재가 주는 경외감을 맛보거나 불평이 멈추고 잠잠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없다. 그의 임재 대신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나아가면 깨어진 꿈 가운데서도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소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탱해 주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다. 성령은 측량할 수 없는 자비 안에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실재를 채워 주시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길을 비추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께 대한 모독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신다. 이것이 에덴 동산 이후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는 우리는 마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내 몫의 재산을 나눠 주세요”라고 말하는 탕자와 같다. 그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악한 옛 생활의 길이다. 인생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이미 전에 만났다. 그를 만나는 소망은 이 세상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소망을 훨씬 초월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첫 번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와 더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생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은 악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천국을 주셨는데 우리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은 그를 멸시하는 것과 같다. 세상과 다른 평안(마11:28) 육체를 따라 사는 삶(원만한 인간관계, 건강,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재력, 보람된 직업 등…)에는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다. 인간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기본 원칙을 따른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면 한 동안 평안을 즐긴다. 그러나 그런 평안으로는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 예수님은 다른 종류의 평안을 주신다(요14:27).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에서 받는 축복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보장된 최상의 축복에 의존한다. 즉,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의 임재 하심을 느끼지 못할 때라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며, 나쁜 일이 일어날 때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눈을 멀게 하는 속임수 합당하게 기도하고, 도덕적으로 살고 의미 있게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고, 하나님의 임무는 우리가 가장 원하는 축복으로 우리에게 보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속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은혜와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된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은(당시에 가장 큰 교회에서 목회했고 가장 잘 팔리는 책의 저자였으며 능력 있는 설교자로 유명했던) 심한 관절염과 우울증과 한 평생 고통당했다. 그의 삶에 혼합된 고통과 축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 삶에 섞여 있는 축복과 시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보장되지 않은 축복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궁극적인 만족을 추구한다. 거짓된 우상(더 좋은 자녀, 건강,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효과적인 사역 등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모든 문제가 파생 되었다. 이기심이 발동하고 인간 본성이 타락하게 되어 악한 마음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잘못 산 옷을 바꾸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영혼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돌아서서 다른 축복을 좇아간다. 그래서 결국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1)축복을 받으면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옛 생활의 길이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올바르게 살면 삶이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율법적인 현대의 유대인과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다. 2)축복과 시련은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실리주의자가 되어서 성경의 원리를 우리의 유익을 위해 타협할 수 있다고 본다. 아니면 율법주의자가 되어 형식에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내면의 고통을 보호하는 이상한 형식적 행동에 사로잡히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된다. 3)더 나은 인생을 위한 수고가 헛되고 너무 힘들게 느껴져서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무감각한 생활, 정신 착란과 성격 장애 등의 정신병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우리 눈에서 비늘을 벗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할 때, 존 파이퍼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과 육신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그럴 때 마귀는 우리 안에 발붙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된 더 나은 삶 때문이 아니라, 더 좋은 소망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일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길을 따라 산다면 무거운 압박감에서 벗어난다. 비록 여러 시련을 겪을지라도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임마누엘의 은혜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제3부 성령의 바람: 새롭게 열린 길 기쁨의 문이 열리다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옛 생활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 단지 비방하고 시기하고 성적으로 타락하는 죄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거나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할 것임을 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을 추구하고 거기에 더 귀한 가치를 두었던 것을 회개한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의존하던 것들을 벗어 던지고 깨어진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구원자 예수님을 보는 것 고통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 반응을 일으킨다. 1)하나님을 버림 :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데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람? 인생을 지켜주는 것이 하나님의 임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인생의 가장 소중한 꿈이 사라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2)하나님께 맡김 :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행해졌으면 하는 일들만 요구하기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며 그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다. 인생이 형통할 때나, 당신의 잘못된 믿음과 확신이 타당해 보일 때 조차도 당신 영혼은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 고통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 고통은 계속되고 더 깊어진다. 기도보다는 값비싼 여행이나 취미 생활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어디서도 위로 받지 못해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새로운 길을 따라 살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순례의 길을 걷도록 초청하고 싶다. 비록 환상이 깨어진 인생, 얕고 일시적인 쾌락으로 기득한 인생, 깊고 지속적인 슬픔을 주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인생일지라도 말이다. 예수님의 보혈이 그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그것은 인생을 평탄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게 하는 생명의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인생을 더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을 잊지 말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춤추기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더 나은 소망을 위해 살아간다. 그 새로운 길에서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나아온다. 그리고 나의 고통이 없어지기를 바라기보다 거룩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며 자신이 얼마나 타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시련 때문에 슬퍼하기보다는 나의 자기중심적인 이기심과 거만 때문에 눈시울을 적신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의지하여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간다. 우리의 궁극적인 갈망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하나의 궁극적인 갈망, 즉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를 만나며, 그를 알아가고 즐거워하며, 그분을 나타내고 그분처럼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산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하나님이 가장 최선의 것을 주시리라 믿는다. 환경이 평탄하든지 힘들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지속적으로 삶을 주관한다.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모든 소망을 둔다. 부모를 잘 섬기는 자녀, 신뢰할 만한 친구, 가정과 직장과 사역의 성공, 신비하고 놀라운 신앙 체험을 바라지만, 모두 두 번째 갈망일 뿐이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인식하며, 성령의 바람으로 항해를 한다. 그래서 영적으로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수 많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멈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성령의 리듬에 맞추어 그리스도와 함께 춤을 춘다.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들은 급진적인 은혜를 믿는다. 먼저 거룩하다고 선포함 받고, 그런 다음 거룩하기를 원하게 되며, 결국 실제로 거룩해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온다. 하나님이 그들의 최고 소원이며 첫째 되는 갈망이기 때문에 은혜에 의존하며 하나님을 원한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새로운 인과 법칙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다”(갈6:8) 이러한 인과 법칙은 유효하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 그러니 이것은 옛 생활의 길에 적용되는 인과 법칙과는 다르다. 올바로 행하는 것과 인생이 형통한 것 사이에는 원인과 결과의 약속이 깨어졌다. 대신 하나님은 새로운 인과 관계를 만들어 주셨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면 고통과 진리를 추구한 후에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충만하고 활력 있고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원받은 이후에 이보다 더 중요한 선택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다른 모든 열정보다 더 강하지 않으면 선택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더 명확히 듣는 것을 배우면 성령은 새로운 길을 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이 가장 우선시 되도록 강화시켜 주셔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깊은 기쁨과 풍성한 의미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임마누엘이 이루어질 것이다. 임마누엘, 즐거움의 중심 요한복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도록 돕기 위해 저술되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또한 요한은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 주었고, 증거가 희박해 보일 때에도 예수님을 계속 믿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 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21:2-3)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리라는 임마누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까이 오신다는 더 좋은 소망을 온전히 깨달으면 그 이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나은 삶도 우리의 것이 된다. 더 이상 깨어진 꿈도 없고, 눈물도, 애통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던 것을 초월한 축복만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마음 중심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지친 순례자여, 신앙의 경주를 계속하라. 낙심치 말라. 임마누엘의 계획이 곧 진행될 것이다. 현대 기독교가 더 나은 삶을 주는 것에 전념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실제 만남을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관된 유익, 즉 적은 고통과 더 큰 축복, 현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축복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기에, 우리는 이것을 하면 저것을 준다고 보장된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비록 우리는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하나님은 그의 임마누엘의 계획에 따라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 우리를 초청하신다. 진행중인 임마누엘 아젠다(Agenda) 사도 요한은 우리가 편안한 환경이나 친밀한 인간관계가 주는 행복한 감정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에서 누리는 가장 크고 소중한 즐거움으로 나아가도록 초청한다. 요한은 모든 곳에서 임마누엘 아젠다를 제시했다. 태초부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를 아는 것을 가장 중요시할 때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경배함으로써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여기에 계신다. 우리의 가장 고상한 부르심, 우리의 가장 깊은 기쁨은 하나님께 가까이 감으로써 그의 임재를 축하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더 좋게 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부요함 누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눅12:13-21)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치 못한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다. 아무도 옛 생활의 길을 따라 사는 동시에 새로운 길을 따라 살 수는 없다. 영혼의 창고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보물들을 쌓아 놓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뿐더러 경배할 수도 없다. 옛 생활의 길을 따라 사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자로 만든다. 우리가 새로운 길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교제하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갈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임마누엘 아젠다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일에 무관심 하라는 말은 아니다. 가까운 공동체나 가정을 여전히 관심 있게 돌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원한 것과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가장 큰 보물, 최상의 축복, 최고의 열정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의 영광이 모든 것의 중심 무대이다. 그러므로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축복을 보류하시더라도 임마누엘 아젠다를 성취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그 축복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과 법칙은 더 이상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듯이 여전히 기도한다. 아니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간청을 들어 주실 수 있다. 자녀들의 간구를 들어 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다. 그러나 그것이 첫 번째 갈망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자세는 달라진다.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응답을 강요하고 주장하는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필요를 간청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구하는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그분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그분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는 우리의 시각을 주님의 시각으로 바꾸어 준다. 하나님의 섭리 다른 시냇물은 없다 새로운 길의 초점은 시련 유무에 있지 않고 생수와 영혼의 양식에 있다. 새로운 길의 인과 법칙에는 약속이 있다.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통해 열린 그 길로 가면 만족이 있을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7:38)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1-3) 큰 그림 시련이 닥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가 더 기도하고 잘 하면 더 큰 시련이 오지 않을 거라는 옛 생활의 길을 간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법칙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섭리, 즉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임마누엘 아젠다를 이루시고, 성경의 새 언약을 성취하시는지 태초부터 7장으로 나눠서 전체 그림을 살펴보자. 제1장: 하나님만이 계셨을 때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 거기에 성삼위 하나님이 계셨고 영원한 하나되심으로 좋은 교제를 하고 계셨다. 완전한 기쁨, 완전한 평강, 완전한 관계 안의 완전한 성품, 항상 동일하신 분이시다. 그러다 교제하시는 성품을 따라 천사들을 창조하셨다. 제2장: 하나님과 천사들 하나님이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위치를 주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엄 하신 존전에서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경험하도록 창조되었다. 제3장: 악의 시작 루시퍼는 모든 천사들 중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으나, 그는 하나님께 속해 있는 영광을 갖기 원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게 되었다. 그러한 갈망과 함께 악이 시작되었다. 악은 다른 무엇에 하나님 이상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제4장: 사람들의 등장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완전한 공동체의 즐거움과 놀라운 삶의 축복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인간들은 주님을 섬기며 그의 전능하심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할 뿐 아니라 하나님 마음을 깊이 즐기도록 지음 받았다. 제5장: 타락한 인간 죄가 인간 마음에 독버섯처럼 퍼졌다. 그 이후 모든 사람은 인생에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에서 더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제6장: 하나님이 역사하심 ①노아와 언약을 세우셨다(창9:11) ②아브라함의 언약이 세워졌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의 축복의 도구이다. ③모세의 언약을 주셨다. 모세를 통해 받은 율법이 이제는 우리 마음에 있다. 달라진 것은 거룩함에 따라 갈망이 생기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위해 순종하는 것이지, 우리 삶이 형통하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새로운 길이다. ④다윗을 통해 언약을 주셨다. 다윗에게 약속된 왕국은 현존한다. 그리스도가 이미 보좌에 앉으셨고 언젠가는 우리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⑤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새 언약을 세우셨다. 즉 임마누엘 아젠다의 마지막 단계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성취되는 새 언약이다. 새 언약의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제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성삼위 하나님을 만난다는 소망으로 기쁨 충만하여 이제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더 나은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제7장: 영원한 교제 여기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된다. 이제 임마누엘 아젠다는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섭리 역사의 6장에 있다. 이제는 모든 문제 속에서 성령이 주시는 열심과 지혜로 그 문제를 다루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새로운 길이다. 이 길은 가장 소중한 보배인 하나님을 경배하고 비록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제4부 새로운 믿음 :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생활의 활력소이며 우리가 사는 이유이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 머리와 심령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야 한다. 두 갈래길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이루어지고 즐거울 때에는 영적 순례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인생이 힘들거나 또는 편안한 삶이 내면에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깨달을 때,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급속도로 커진다. 분주한 삶과 겉으로 치장된 모습 뒤에 거짓, 허무, 외로움, 지루함이 숨겨져 있음을 인정한다. 당신은 이러한 당신 영혼이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란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신의 정체성, 기쁨, 목적을 온전히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즐거움의 원천이다. 더 많은 돈, 멋진 결혼, 좋은 자녀, 친구, 훌륭한 사역, 그 무엇도 잠깐의 즐거움을 더해줄 뿐 공허함은 더 깊어졌다. 그래서 더 집착하는 악순환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헛되며, 거짓된 즐거움에 속아 왔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는 영혼을 소유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 받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통해 살아 가도록 지음 받은 영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없다. 당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순종 하는 것(더 많은 훈련, 더 많은 사역, 감정적인 안정을 얻는 것, 더 많이 기도 하는 것, 더 자존감을 갖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삶에 빠진 것은 당신의 영혼 깊은 곳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인 것이다. 앞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즐기려는 부담감은 우리를 너무 바쁘고 종교적이게 만든다. 가정에 너무 집착하거나 사역에 대한 애착을 끊을 수 없게 하고, 친구에게 너무 매이거나 자녀들 삶에 너무 간섭하게 하고, 인생에 너무 얽매이게 만든다. 오늘날은 피곤한 시대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불신자들처럼 지쳐 있다. 그러나 이제는 냉소적이며 적당히 안주하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서 거룩한 만남, 진실하고 신령한 만남을 갈망하길 바란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은, 쾌락이 값싼 가짜 기쁨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 조바심 내며 우리 삶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을 주시며 축제를 즐기라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뻐할 이유가 있다. 우리가 실패할 때에는 그의 은혜를 기뻐하고, 축복받을 때는 그의 자비하심을 기뻐하며, 거절당할 때는 그의 한없는 사랑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성령의 새로운 길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동체로, 그리고 우리 내면의 영적 성장으로 이끌어 준다. 이 영적 순례의 길은 더 높은 차원의 영적 경험을 하도록 세워주는 관계를 원하게 되며, 안전한 사랑 가운데 서로를 알고 진정한 관심을 나누며 소망의 지혜를 발견하고 영적 능력의 힘을 공급받는 교제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이끌어 가는데 지쳤다. 옛 생활의 길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우리는 더럽고 지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리라 믿으며 은혜를 받으려는 소망으로 그를 만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의 독자를 죽음에 내주는 값을 치르면서까지 약속하신 것이다. 그것이 임마누엘 아젠다이다. 새로운 길의 주춧돌 다섯 개 의로운 삶과 눈에 보이는 축복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없다. 옛 생활의 길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를 이용하는데 몰두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즐거워하거나 그를 닮아가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옛 생활의 길에는 진정한 예배나 진정한 공동체, 진정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육신의 것을 심으면 육신의 것을 거둔다. 육신적 삶의 필연적인 결과 때문에, 겉으로는 잘 꾸몄지만 굶주린 영혼을 거두게 된다. 우리의 내적 공허는 갈증과 필요를 채우려는 옛 삶의 방식을 더더욱 따르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굶주림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된다. 즐기기 위한 축복으로 삶을 채우고 자기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이 주시는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맺는다. 새로운 길을 걸으면 우리는 성장으로 나아가게 되며, 기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공동체를 경험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이 일은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일어난다. 새로운 길에서 우리의 삶은 좋은 환경을 통해 만족을 누리고 싶은 충동에서 자유 해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함을 누린다. 여기에 새로운 길을 사는(초석이 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주춧돌 다섯 가지 요소들을 나누고자 한다. 이 요소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주어진 새 언약(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보장해 주신 것이고, 이것은 그에게 나아가는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자비로우신 약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신 우리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 진노, 사랑을 모두 진지하게 내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 1.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살펴보라 2. 당신 앞에 항상 두 갈래 길이 있음을 인식하라 3. 당신의 목적을 재정비하라 4.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방법을 깨달으라 5. 당신의 기도 생활을 새로운 길의 생활에 맞추라 현 위치 점검 :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생명력 있는 한 가지 진리를 명심하기 바란다. ‘깨어짐이 자유로 인도하는 길이다.’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을 보면서 우리 안에 더러움을 정결케 할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유케 되는 깨어짐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성령의 새로운 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자유케 하기 위해 고통과 문제들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의 때에 은혜를 비추시며 우리 마음에 아버지의 사랑을 부어 주실 때, 우리가 얼마나 실패하고 갈등했는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했던 사랑과는 다른 거룩한 사랑의 맛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향해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깨어짐과 자유함은 함께 온다. 먼저 고통이 온 다음에 위로가 오고, 환난이 온 후에 기쁨이 온다. 먼저 무가치를 깨달은 후에 사랑을 느끼고 자아가 죽은 다음에 영혼의 부활이 온다. 깨어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단계이다. 그것은 축복받는 더 나은 삶에서 더 좋은 소망을 약속하는 친밀함으로 우리 눈을 돌리게 도와준다. 축복은 결코 깨어짐을 치유해주지 못하고 단지 그것을 덮어 줄 뿐이다. 우리가 가장 가기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지 못할 때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어떤 축복도 우리가 치유할 수 없는 내면의 깨어짐을 직시할 때까지는 우리를 옛 생활의 길로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에게 충성한다고 하면서도 배우자, 자녀, 친구, 사역, 건강, 성공 등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누린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간음으로 보신다. 그것은 사형 죄에 해당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우리 대신 사형시키셨다. 그리고 호세아가 고멜에게 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즐겁게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서 스스로 멀어지셨다. 그 멀어짐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갈증을 증폭시켜서 하나님의 임재만이 인간의 깊은 갈망을 채울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안에는 서로 다른 두 태도가 있다. 첫 번째 태도는 누구든지 갖고 있다. 이사야는 당시 사람들이 모두 양같이 각기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았다. 누구든지 자연적인 감각이 통하는 길로 갔다. 즉, 최선을 다하면 인생이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힘이 매우 강하다. 너무 강해서 하나님과 직접 만남이 더 큰 힘이 될 때까지 내 인생을 주관한다. 한편 내 인생을 축복하시도록 하나님을 이용하기보다 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또 하나의 태도도 내 안에 있다. 성경은 내가 그것을 느끼든지 못 느끼든지 그것이 내 안에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그것은 새 언약이 공급해주는 새 마음이다.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 를 발견하는 것이다. 항상 깨어짐 새로운 길을 택하는 것은 값을 치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그 값을 치를만한 자본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장 고상한 즐거움의 근원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는 믿음을 주실 때까지 그에게 계속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함이라”(고후1:9)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거만한 바리새인과 겸손한 세리의 차이를 살펴보라.(눅18:11,12) 바리새인은 각색된 인과 법칙을 여전히 믿고 있었다. 율법을 어느 정도 올바르게 지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세리는 자유의 법에 모든 소망을 걸었다. 자격 없이 깨어지고 절망적인 모습 그대로 나아오면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까이 하여 주시리라는 믿음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귀한 원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은 자기 발견은 항상 깨어짐을 가져오고, 겸손을 심화시키며, 의존과 감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좁은 길을 찾는 적은 무리 1) 옛 생활의 길을 따르는 자들의 특징 __인생을 시스템으로 조직화 함: 신비한 것을 싫어하며 자기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인과 법칙을 좋아한다. __깨어짐의 투명성을 갖지 못함: 하나님 자신을 향한 갈망이나 하나님의 자비하심 없이는 자신이 축복받을 자격이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깨닫지 못한다. 2) 새로운 길을 따르는 자들의 특징 __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받아들임: 그들은 신비한 세계가 있음을 인식한다. 그래서 인생이 예측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시스템에 매이지 않는다. 비록 때로는 두렵지만 그들은 신비한 길로 운행하시는 은혜로우신 주권자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인생의 신비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들은 시스템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어려움 가운데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__그들은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갈등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실망시키고 좌절시키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과 대화한다. 그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낼지라도 어딘가 빛이 있고 언젠가 그것을 보리라는 떨리는 확신을 가지고 견뎌낸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는다. __그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깨어짐을 위한 투명성이 되도록 주의한다: 그들은 내면에서, 하나님께 더 이끌어 주는 것만을 들여다 보길 원한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나누고 하나님을 추구하는데 방해하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선택의 기로 : 어떤 사이클을 택할 것인가 1) 옛 생활의 계획 1 ____ 재 조정 사이클(부인→전략→평가→재정비→안정) 이 사이클은 당신이 다를 수 없는 것을 부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전략을 세우고, 평가하고, 방법을 재 정비하는 사이클을 계속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안정을 느낀다. 2) 옛 생활의 계획 2 ___ 치료적 사이클(개방→깨달음→방향제시→격려→정렬) 이 사이클은 현실을 부인하지 않고 당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개방’하면서 시작된다. 치료는 감정적 노출을 위한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또한 이 깨달음에서 ‘방향이 결정’된다. 그리고 당신을 믿어주고 편이 되어 주는 친구나 치료자의 ‘격려’가 도움이 된다. 마지막 단계로 당신의 깨달음과 행동을 ‘정렬’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행해야 할 때다. 이 두 가지 옛 생활의 사이클은 어느 정도 형통한 인생을 유지하는 방법에 의존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축복받는 더 나은 길을 가는 순간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모든 것을 항상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이 두 사이클은 인생이 잘 될 때에는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힘들 때는 분노하며 절망하게 한다. 3) 새로운 길의 유일한 계획 ___ 영적 사이클(깨어짐→회개→의탁→확신→자유함) 새로운 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조용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새 삶은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당신이 얼마나 거만했는가를 깨닫는 곳이다. 영적 사이클은 모든 것에 대한 깨어짐에서 시작한다. 당신이 이제까지 누리는 만족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성령은 깨어짐을 통해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족을 얻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 마음이 변화되었고 회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령은 깨어짐과 회개를 통해 ‘의탁’으로 인도하신다. 병든 딸의 퉁퉁 부은 얼굴 앞에 서 있을 때, 혼자서 이혼 법정을 나설 때,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릴 때 당신은 그러한 문제들을 회피하려는 유혹을 물리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원망하고 슬픔에 잠기려는 유혹도 이겨낸다. 자신을 용기 있는 순교자처럼 보이고 싶은, 가장 어려운 바람도 극복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을 합력하여 영광스러운 절정으로 이끄신다. 어떤 사건도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없는 사건은 없다. 당신은 그것을 믿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온전히 보여주신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한다. 자신을 내맡길 때 놀랍게도 ‘확신’이 일어난다. 성령은 당신의 영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거해 주신다. 이제는 그의 영광을 위해 살고 그의 성품을 즐거워하며 그에게 나아가기 때문에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놀라우신 하나님을 알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면서 더 좋은 소망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걸을 때 성령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말씀해 주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확신을 갖게 된다. 성령이 주시는 확신은 당신 안에 생동감을 일으키고 전적인 ‘자유함’을 가져다준다. 당신 깊은 내면에서 무언가 솟아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당신 안에 생수가 흘러 나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전에 당신을 압도했던 슬픔이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한다. 당신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진정 원했던 사랑과 즐거움, 평화와 오래 참음, 친절과 온유함을 가진 사람이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진정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을 찬양한다. 성령의 길인 새로운 길의 사이클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더 좋은 소망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우리가 그에게 나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고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성령께서 그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짐을 벗는다. 새로운 길은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예리하게 해준다. 목적 재점검 :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종교개혁 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축복을 받기 위해 산다. 우리는 평탄한 인생을 사는데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원리들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지 않게 되고 고통을 통해 우리를 아버지의 임재로 인도해 주는 영적 방향 제시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열심이 점차 식어져서 결국 모든 환경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쉽게 조성되어야 만족하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우리는 완전히 깨어진 성도들이요, 은혜로만 산다는 사실을 알고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인생에서 축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음을 알고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망각하며 살고 있다. 어려움을 통해서라도 영적으로 변화되기를 원하기보다, 편안한 삶으로 인생을 꾸려 나가는데 더 관심을 둔다. 그러므로 순례의 길에서 중요한 세 가지 목적, 즉 거룩한 만남, 영적 공동체, 영혼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의 안주와 편안한 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치유와 성취와 성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의 위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좋은 환경과 성공과 성취의 축복이 우리 삶을 만들어서 결국에는 우리 영혼을 지옥 불에 그을린 숯처럼 태우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대함 그리고 기다림 때때로 보이지 않는 사건이 고통과 공포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어려움이 올 때 첫 번째 초점은 하나님의 임재(만남)로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께 가는 순례의 길에서 사람들과 동참하는 것(공동체), 그리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형성되도록 성령과 협조(변화)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새로운 언약과 임마누엘의 아젠다로 인해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바램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열렬한 갈망이 우리를 새로운 길의 목표로 향하게 할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한 부분임을 믿을 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 인생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신성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흠뻑 젖도록 신비하게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그것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축복임을 아신다. 또한 성령이 계시는 모든 마음의 가장 간절한 갈망이라는 사실도 아신다. 어려움이 왔던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기 위해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격한 눈물이 내 속에서 터져 나왔다. 축복이 거부된 상처 때문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눈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공평해요!”라고 외치는 거만한 마음에서 나온 분노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한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에서 나온 눈물이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길로 들어가는 좁은 문에 내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님, 저는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저의 눈물과 제 인생의 이 힘든 순간이 허비되지 않게 하소서. 저를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도록 저를 해방시켜 주실 것을 확신하며 성령께 저를 맡깁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힘과 마음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어두움의 베일이 걷히고, 나는 새로운 언약을 통해 성취된 개혁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기 원했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를 원했다. __삼위 하나님 한 분 한 분과 교제하는 하나님과의 만남 __은혜를 진정으로 깨닫고 하나님을 향해 순례하는 성도들, 깨어지고 감사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와의 연합 __예수님을 닮아가는 영적 성장과 삶의 변화. 좁은 길을 걸으며 아직도 나는 변화의 일출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는 성령의 능력으로 내가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실망할지라도 여전히 사랑하며, 화가 나더라도 여전히 참으며, 손해 보더라도 여전히 주며, 공격을 받더라도 여전히 온유하며, 인생에서 지치더라도 여전히 소망을 갖는 사람으로…. 최상의 소망은 가장 나쁜 비극에서도 생존한다. 오히려 비극 때문에 소망이 더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상한 심령으로 깨어진 공동체와 연합하기 위해, 예수님과 닮은 모습으로 성령에 의해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올 수 있다. 다양한 통로 :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나님은 무엇을 주관하시는가?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배인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고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는 하나님과의 교제로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필요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__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용서 __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돌보고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변화시키고 능력 주시는 초자연적인 사랑 __나쁜 사람들을 단지 사회적 규범에 맞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선하며, 궁극적인 선을 귀중히 여기는 하나님을 닮은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영적 능력이다. 하나님은 그가 성취하시기 원하는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 그는 지진이나 테러, 심지어는 교회의 식사나 소풍, 이혼이나 결혼 등 모든 역사를 오로지 임마누엘의 아젠다를 향해 운행하신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며 다른 어떤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백성들을 세우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종류의 고통이나 어떤 분량의 고통에서 우리를 반드시 지켜주시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그분께 가서 깊은 기쁨을 경험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그의 제자들이라면,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갈급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할 것이며, 또한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영적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영적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또한 기적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삶에서 증거할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라(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세 가지 기적) 1)기적1 :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하나님과의 만남) 우리는 욕심과 질투, 낙심과 추함, 거절당할 만한 이기심, 잘난 체 하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환영을 받으며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을 나누고,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순수한 자임을 깨닫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며 우리 안에 선을 행하는 힘이 생긴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기적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를 경배하도록 만든다. 2)기적2 : 공동체를 경험할 것이다 (솔직하고 진정한 공동체) 최소한 한 사람과, 때로는 여러 사람과 영적 친밀함을 나누는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실패와 상처를 겪은 후라도,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간다면 관계를 어렵게 하는 힘을 이겨낼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발견할 것이며 진정한 공동체로 인도될 것이다. 자기 유익에 좌우되는 추함을 깨달을 때, 피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 관계가 절망적일 때 비로소 우리는 초자연적인 사랑을 배우게 된다. 3)기적3 : 변화될 것이다(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놀라운 변화) 깨어짐과 회개는 의탁으로 인도된다. (욥40:3,4 욥42:5,6)인생을 즐기기보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갈망을 느끼고, 초자연적인 도움 없이는 그 방향을 향해 한 걸음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성령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할 수 있다. 성령의 7가지 사역 성령은 우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사역을 계속하신다. 다음의 성령의 7가지 사역 안에서 우리는 안식(의존)을 누릴 수 있다. 1)생각나게 하심(요14:26) : 꿈이 깨어질 때, 테러가 일어나고 결혼이 실패할 때 성령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협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하나님 아버지의 아젠다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신다. 2)영화롭게 하심(요16:14) :우리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나아올 때, 성령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 즉 영원한 생명과 죽으심과 부활로 영화롭게 하신다. 3)부어주심(롬5:5) : 우리는 우리가 사랑 받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환경이 힘들어지는데도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원하는 종류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충분한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시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그는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며 확신시켜 주신다. 4)확신을 주심(롬8:16) 5)인치심(엡1:13) : 인치심은 안전함을 뜻한다. 폭탄이나 암이나 가족 문제에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아젠다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에서 안전하다는 뜻이다. 6)기대케 하심(고후1:21,22) : 성령은 우리의 상속의 증거이시며 앞으로 올 것의 보증이시다. 그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맛보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 속에 때때로 기쁨이 흘러 넘치게 하고, 필요할 때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주시며 압도하는 아름다움을 보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장차 올 영광을 보며 현재를 견딜 수 있다. 7)기름 부으심(요일2:20,27) :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고 그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려는 더 나은 소망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이끌어 낸다. 성령께서 사랑하고자 하는 열심과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기름 부음이다. 또한 이 기름 부음은 새로운 길을 따르는 자들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도전에 올바르게 반응하도록 하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열정의 방법임을 나는 확신한다. 성령께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위에 오셨을 때 그는 지혜와 능력, 경외의 즐거움을 그리스도께 주셨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배우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 알고 해낼 능력을 주시는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이다. 새로운 기도 : 아빠에게 드리는 기도 야고보는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온전하게 성숙시키도록 친구처럼 받아 들일 것을 권면한다. 야고보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갈망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을 알고 그를 닮아가는 더 나은 소망을 갈망하는 새로운 길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새로운 길의 기도의 핵심 옛 생활 방식의 기도는 문제 해결과 해결 방법을 요구하고 만족을 요구한다. 즉 간청보다는 강요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길의 기도는 간청을 하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의 기도는 내용의 시작과 끝이 주님께 나아가는 것에 맞춰져 있다. 간청이 따르지만 그것이 결코 우선시 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복종하고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높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표현하라 나는 새로운 길의 기도를 ‘아빠에게 드리는 기도’라고 부른다. 첫째,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드려라 기쁨, 긍휼, 즐거움, 분노, 정욕, 테러와 같이 당신이 직면한 일들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아무것도 가장하지 밀라. 위협받지 않고 내가 다룰 수 있는 것만을 직시하려고 하거나, 힘든 문제는 부인해 버리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항상 직시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역시 잘못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라. 영적 순례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심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체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진리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 셋째,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정결케 하라(시139:23-24) 당신 마음에 있는 태도와 동기와 결심을 점검하라.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의 말씀을 믿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즉, 정결케 함이란 깨어짐과 회개를 포함한다. 넷째, 하나님을 원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라 당신의 모든 것과 함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심지어 육체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는 갈등조차 하나님께 맡길 때 당신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수고하고 지친 자들아 오라 모든 것을 올바르게 지키지 못한 자들아 오라 당신 마음 중심에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을 모두 내려 놓을 만큼 주권적 기쁨을 경험할 것을 기대하라.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를 당신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기를 기대하라. 성령께서 임마누엘 아젠다를 성취하시기 위해 당신 인생의 모든 상황을 다루는데 필요한 영적 지혜와 사랑의 열정을 공급하실 것을 신뢰하라. 당신 안에 살아 있는 진실한 마음으로 다른 어떤 축복보다도 더 주님을 알기 원하며, 경배하며 즐거워하고 섬기며, 그분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눈물로 고백하라. 기도하는 가운데 당신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간구, 그리고 당신이 은혜의 도구가 되기를 구하는 기도가 흘러 나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염려하거나 강요하는 태도 없이 확신을 갖고, 모든 무거운 짐을 아뢰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나아올 것이다. 성령의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우리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면서 천국에서 영원히 놀 때까지 그 길을 따라가야 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이 영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실 때까지 지금은 좁은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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